메멘토를 처음 보았을 때 충격이 잊혀지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마치 옷핀처럼 구부려 각기 다른 축의 사건을 재구성하다니. 그 편집 때문에 내가 이해하고 기억한 게 맞나 하며 영화를 몇 번을 봤던 것 같다.

메멘토 이후 배트맨, 프레스티지,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그리고 오펜하이머까지 거의 크리스토퍼 놀란의 모든 작품을 극장에서 보았다. 평이 극단적이던 인썸니아만 작년에 OTT에서 보다 아직까지 완주를 못했다.

실망감을 주지 않는 그의 작품이기에 개봉 직 후 아이맥스에서 관람을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린 시절 보았던 장면들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다. 외눈박이 괴물과의 사투, 예상치 못한 바다 괴물의 등장, 사람을 홀리는 인어공주 등등. 분명 난 원작을 읽은 적이 없는데 왜 이런 장면들은 본 것 같을까?

어릴 때 보았던 ‘우주선장 율리시스’ 때문일까? 고전 원작 오디세이아를 SF 모험극으로 재해석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이 난해한 작품이 나도 모르게 내재화되었나보다. 게다가 오디세이아에서 나오는 모험과 괴물은 신밧드의 모험, 해저 2만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다양한 작품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하니 괜한 느낌은 아닌가보다. 해저 2만리의 네모 선장의 이름조차도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을 만났을 때 자신을 ‘아무도 아니다’라는 뜻으로 소개한 ‘우티스(Outis)’의 라틴어 이름이라고 한다.

이런 다소 만화같기도 한, 한편으로는 지루할 수도 있는 고전 서사가 놀란을 거치니 역시 작품으로 나왔다. 100%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화면도 압도적이지만 바닥을 울리며 장면을 더욱 웅장하게 만드는 음악 또한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이렇게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 같다.

거기에 연기력은 기본으로 탑재한 배우들 덕분에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맷 데이먼, 로버트 패티슨,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젠데이아, 샤를리즈 테론까지. 흥미로운 건 인셉션에서 꿈의 설계자로 나왔던 아리아드네(엘렌 페이지)가 오디세이에서는 트로이 목마로 유인하는 병사 시논(엘리엇 페이지)으로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

특히 영화 속에서 가장 눈이 가는 배우는 샤를리즈 테론이었다. 화장을 거의 안 한 얼굴임에도 영화 속에서 가장 돋보인다. 영화에서는 너무 정보가 없이 나온다. 아래는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그녀를 회상하는 원문이다.

“바다 가운데 외딴 오기기아 섬에는 머리를 곱게 땋은, 아틀라스의 딸 칼립소가 살고 있는데, 그녀는 무시무시한 여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들이든 필멸의 인간들이든 그 누구도 그녀와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독하게 불운한 저의 운명이 저를 홀로 그녀의 화롯가로 데려갔습니다. 이는 제우스신께서 그의 번쩍이는 번개로 저의 날랜 배를 세게 내리치셔 포도주 색깔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저의 배를 산산이 부셔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의 훌륭하고 충실한 전우들이 모두 다 죽었고, 저 혼자만 양쪽 끝이 휜 배의 용골을 두 팔로 꽉 움켜잡았습니다. 그런 상태로 저는 아흐레를 떠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열흘째 되던 날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 신들께서 저를 오기기아 섬으로 데려다주셨습니다. 그 섬에는 머리를 곱게 땋은 무시무시한 여신인 칼립소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그녀의 집으로 데려갔고 환대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음식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저를 죽지도 늙지도 않게 만들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샤를리즈 테론 때문에 오디세이에서 거의 없는 시간의 재구성의 효과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왜 애타게 붙잡는 걸까? 왜 떠나는 걸까?

만약 내가 영화 속의 오디세우스처럼 샤를리즈 테론이 같이 살자는 제안을 받았으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Yes’라고 했을 텐데;;;

오디세이는 원작부터 액자식 형태로 스토리 흐름이 재구성된 작품인 탓인지 시간의 재구성은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 정도로 물러나 있었다. 극한으로 시간을 재구성한 테넷이 큰 재미를 못 본 탓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그의 장기인 시차 편집의 재미는 덜하지만 훌륭한 마스터피스를 만든 것만은 사실이다. 아침 일찍 눈 비비며 찾아갔지만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우주에서 펼쳐지는 대서사시를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한다면 그의 작품은 신화 속의 장소에서 펼쳐지는 미스틱 오페라라는 장르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다.

나의 오디세이 1줄 요약

2차 대전에서, 먼 우주에서, 화성에서 집에 가고 싶어 하던 맷 데이먼이 신화 속에서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이야기.

그 다음 걸음을, 함께

한성희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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