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표님들은 시리즈B를 넘기고 나면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이제 실무는 내려놓으셔야죠. 위임하시고, 팀장들 믿고 맡기세요.” 스킵 레벨 미팅도 하지 말라는 조언까지 따라옵니다. 실무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중간관리자를 건너뛴 셈이 되니까요. 회의 안건도 팀장 선에서 정리된 것만 올라오고, 대표는 그 요약본으로만 회사를 파악하게 됩니다. 이 조언대로 몇 년을 보낸 대표라면,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진 논쟁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2024년, 와이콤비네이터의 폴 그레이엄이 “파운더 모드”라는 짧은 에세이를 썼습니다. 파운더 모드란, 창업자가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실무와 디테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고 계속 개입해야 한다는 경영 관점입니다. 위임을 극대화하고 스킵 레벨 미팅을 금기시하는 “매니저 모드”는 대기업 경영 이론에서 온 것이지, 스타트업이 실제로 커지는 방식과는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 에세이가 짧은 분량에도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서 오래 회자된 이유는, 많은 창업자들이 “손을 떼야 한다”는 조언을 따르면서도 속으로는 뭔가 어긋난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에어비앤비가 다시 창업자 중심으로 돌아간 이유
이 에세이가 화제가 된 데는 브라이언 체스키의 사례가 있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한때 전통적인 매니저 계층 구조로 조직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속도가 느려지고, 체스키 스스로 제품 디테일에 대한 감각을 잃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알려졌습니다. 보고 체계를 몇 단계 거쳐 올라온 결정은 현장의 실제 문제와 조금씩 어긋나 있었고, 그 어긋남은 각 단계에서는 작아 보여도 맨 위까지 올라오면 전혀 다른 결정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후 에어비앤비는 조직 구조를 다시 창업자 중심으로 되돌렸습니다. 체스키는 스킵 레벨 미팅을 다시 열었고, 제품 실무에 깊이 개입하는 방식으로 돌아갔습니다. 리플링의 파커 콘래드도 비슷한 입장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창업자가 디테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순간, 회사가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도 같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손을 떼는 시점 자체보다, 그 손을 어디서 떼야 하는지를 문제 삼고 있는 셈입니다.
마이크로매니징이라는 반론
물론 이 논쟁에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파운더 모드”가 결국 과도한 개입을 정당화하는 세련된 변명이 될 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창업자가 모든 결정에 끼어들다가 조직을 망가뜨린 사례는 파운더 모드 담론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있었습니다. 위임이 부족해서 조직이 병목에 걸리는 경우와, 위임을 너무 일찍 해서 감각을 잃는 경우는 겉보기엔 반대지만 결과는 비슷하게 나쁩니다. 실행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둘 다 “대표가 내 일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히기 쉽고, 그 신호가 반복되면 유능한 사람일수록 먼저 떠납니다.
실무에서는 “디테일에 개입한다”와 “모든 걸 통제한다”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은 전혀 다른 행동인데, 한쪽을 하려다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파운더 모드 논쟁을 “손을 뗄 것인가 말 것인가”로 읽으면 오히려 실용성이 떨어집니다. 그레이엄도 체스키도 창업자가 모든 결재선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대신 두 가지를 구분하자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회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디테일과, 그렇지 않은 디테일을 나누고, 앞쪽에는 계속 남고 뒤쪽은 실제로 넘기는 것입니다. 제품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화면, 고객이 가장 먼저 겪는 순간, 채용 기준처럼 회사의 기준 자체를 만드는 지점은 창업자가 여전히 직접 봐야 할 구간입니다. 반면 그 기준이 한 번 세워진 뒤에 반복되는 실행까지 창업자가 계속 쥐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기준을 만드는 일과 그 기준대로 매일 실행하는 일은 다른 종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무로 옮기면, 정기적으로 실무자와 직접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되 그 자리를 “보고받는 자리”가 아니라 “현장을 확인하는 자리”로 쓰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결정을 그 자리에서 빼앗아 오면 마이크로매니징에 가까워지고, 질문만 하고 정보를 얻어가면 파운더 모드에 가까워집니다. 다음에 중간관리자를 건너뛰어 실무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눈 자리가 있었다면, 그 자리는 결정을 빼앗는 자리였습니까, 정보를 얻는 자리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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