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한 명 없이, 공동창업자도 없이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개발은 AI 코딩 도구가 맡고, 디자인은 이미지 생성 도구가 처리하고, 고객 응대는 챗봇이 대신합니다. 대표는 전략과 의사결정에만 집중합니다. 이런 구조의 회사가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른바 유니콘 규모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최근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이 질문이 자주 오갑니다. “1인 유니콘”이라는 말도 이 질문에서 나왔습니다.

1인 유니콘이란, AI 도구의 발전으로 아주 소수의 인원, 극단적으로는 창업자 한 명만으로도 기업가치 10억 달러 규모의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담론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담론이 널리 퍼진 계기로 꼽히는 것은 OpenAI의 샘 올트먼과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가 각각 이런 전망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일입니다. 이후 이 전망은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서 자주 인용되며 찬반 논쟁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이 담론을 뒷받침하는 관찰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과거에는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고객지원 담당자를 각각 채용해야 팀이 굴러갔습니다. 지금은 이 업무 상당 부분을 AI 도구가 대신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창업 초기 팀의 1인당 산출량 자체가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코드를 짜던 자리, 시안을 그리던 자리, 문의 메일에 답하던 자리를 사람 대신 도구가 채우면서, 같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원 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실제로 관찰되고 있습니다. 1인 유니콘 담론은 이 산출량 증가 추세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담론에 대한 비판도 뚜렷합니다. 핵심 반론은 하나로 모입니다. 매출과 유니콘 수준의 밸류에이션은 산출물의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객이 계약서에 서명하기까지 쌓아야 하는 신뢰, 대형 거래를 성사시키는 영업력, 투자자와 파트너를 움직이는 네트워크, 조직이 커질 때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묶어주는 문화 같은 요소는 여전히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그래서 “혼자서도 유니콘을 만들 수 있다”는 문장은 산출량 증가라는 사실과 밸류에이션 신화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다소 과장된 마케팅 서사에 가까운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구도를 배와 돛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AI 도구는 돛을 훨씬 크게 만들어 같은 바람으로도 더 멀리 나아가게 해줍니다. 그런데 그 배가 어느 항로로 갈지, 어떤 항구와 신뢰를 쌓을지, 폭풍우 속에서 선원들을 어떻게 다잡을지는 여전히 선장의 몫입니다. 돛이 커졌다고 선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담론에서 실제로 쓸모 있는 결론은 “혼자서도 유니콘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라는 양자택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업무를 AI로 넘기고, 어떤 업무는 사람이 직접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 기준을 세우는 것이 더 실용적입니다.

산출물의 형태와 양이 명확하게 정의되는 업무, 예를 들어 코드 작성, 초안 디자인, 반복적인 문의 응대, 데이터 정리 같은 업무는 AI 도구로 넘길수록 1인당 산출량이 빠르게 늘어나는 영역입니다. 반면 상대의 신뢰를 얻어야 성사되는 협상, 처음 만나는 고객이나 투자자와의 관계 형성, 조직이 커질 때 방향성을 설득하는 일은 여전히 창업자나 소수의 핵심 인력이 직접 시간을 들여야 하는 영역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업무에 AI를 똑같이 밀어 넣으면, 산출량은 늘어도 정작 회사의 성장을 좌우하는 신뢰와 관계는 쌓이지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1인 또는 극소수 팀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면, 이번 주에 처리한 업무 목록을 한번 펼쳐놓고 나눠보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어떤 업무가 AI로 넘겨도 결과물의 질이 똑같았는지, 어떤 업무는 직접 하지 않았을 때 신뢰나 관계에 티가 났는지 구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경계선이 바로 지금 이 회사가 서 있는 지형이고, 그 지형을 아는 것이 1인 유니콘이라는 담론보다 훨씬 실용적인 출발점입니다.

그 다음 걸음을, 함께

한성희 서명

다음 성장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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