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미국, 한 남자는 대낮에 아무런 변장도 하지 않고 은행 두 곳을 털었다. 결국 그는 CCTV에 찍혀 몇 시간 만에 잡혔다. 그리고 진심으로 억울해했다.
“저는 얼굴에 레몬즙을 발랐는데 어떻게 찍혔죠?”
그는 레몬즙을 바르면 카메라에 얼굴이 찍히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비슷한 장면이 회의실에서도 벌어진다.
한 팀원은 검증도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그거 될 겁니다”라고 자신감 있게 얘기한다. 참석자들은 모두 불안의 단서를 가지고 있음에도 말을 아낀다.
때로는 문제의 주인공이 리더가 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했어”라며 본인의 방법론을 일방적으로 설파한다. 상대의 의견이나 상황의 변화는 안중에 없다.
자신의 얼굴에 레몬즙을 바른 줄 모르는 것이다.
코넬대학교 더닝과 크루거 교수는 레몬즙 강도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연구를 시작했다. 결과는 단순했다. 실력이 낮을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실력이 높을수록 오히려 조심스러워진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미숙함을 알아볼 안목조차 없기 때문이다.
신학대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1학년은 목사처럼, 2학년은 장로처럼, 3학년은 집사처럼,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평신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알수록 겸손해지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기획자로 처음 일할 때는 내가 제일 잘하는 줄 알았다. 경력이 쌓이며 다양한 상황을 만나고 진짜 고수들을 만나면서 내 기획도 틀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 상황과 상대를 이해하려는 질문이 많아졌다.
진짜 유능함은 “내가 답을 안다”는 자신감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에서 나온다. 자신감을 갖는 것과 상대를 아래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경력이 쌓일수록 혼자 답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팀과의 티키타카로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 진짜 고수다.
우리 회의실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누구인가.
그게 나는 아닐까?
기획일상